2016년 4월호

The Final Girls
(출처 더블유 코리아)


김세정과 강미나, 그리고 김나영이 <프로듀스 101>의 마지막 무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2016년 상반기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외에도 또 하나의 대국민 투표가 있었다. 지난 1월에 방영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엠넷 <프로듀스 101>의 아이디어는 한국 국회의 몸싸움만큼이나 기괴해 보였다. 40여 곳의 연예기획사에서 온 101명의 연습생은 11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데뷔 기회를 놓고 전국의 ‘국민 프로듀서’ 앞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TV를 콜로세움으로 삼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잔인한 오락이다.


잠깐의 짜릿함과 아쉬움은 겪었을지언정 셋은 현재의 상황이 승리도, 패배도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다.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이들은 이제야 겨우 출발선에서 몸을 풀기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다. <프로듀스 101>의 진행자였던 장근석은 4개월간 금요일 밤마다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라”면서 시청자들을 부추겼다. 하지만 김나영, 김세정, 그리고 강미나에게 더 중요한 목표는 누군가의 소녀 대신 스스로가 바라는 자신이 되는 것이다.


김 세 정|
최종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뒤, 소감을 발표하다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약해 보이기 싫어서 방송에서는 최대한 안 울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그만 소속사 이야기를 하다 울컥해 버렸다. 같이 연습했던 언니들과 <프로듀스 101>에 함께 나와 고 생한 참가자들 생각이 마구 났다. 소감을 말하려고 마이크를 들었을 때만 해도 끝났다는 실감은 없었다. 그런데 회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말 끝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그때 감정이 북받쳤던 것 같다.

댓글도 좀 찾아봤나? 아니면 일부러 피했나? 굉장히 많이 본다. 그런데 한번은 댓글에 크게 상처받아서 위축된 적이 있다. 방송 인터뷰에서도 한 이야기인데, 이런 걸 김치에 있는 생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맛있게 먹다가 매운 걸 한번 씹으면 그 맛이 잊히지가 않는다. 하지만 꼭 필요한 재료니까 그 안에 들어 있는 거 아닌가. 이 역시 거쳐야 할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지막 방송을 마친 뒤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생방송 때 엄마가 보러 오셨다. ‘픽 미’를 부르려고 대형을 갖춰 섰는데, 무대 맨 앞 줄에 앉아 계시는 거다. 직접 인사도 못 나누고 입 모양으로만 짧은 대화를 했다. 순위 발표식 때 미나의 이름이 가장 먼저 불렸는 데, 얼핏보니까 그때부터 엄마는 이미 울고 계셨다. 나도 따라 울 것 같아서 계속 딴 곳만 바라봤다. 마지막 소감을 말할 때 가족 이야긴 일부러 뺐다. 정신이 없기도 했고, 괜히 그쪽으로만 초점을 맞추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 끝내고 나니까 슬그머니 마음에 걸리는 거다. 그래도 마지막 무대였는데 엄마가 섭섭해하 진 않을까 싶었다. 그때 엄마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 마음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잘 했다고 하셨다. 늘 내 속을 먼저 헤아려주신다.

음악을 하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나? 초등학생 때 가수가 되고 싶다고 문집에 적은 적이 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동창이 그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린 모양이다. 덕분에 나도 새삼스러운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막연한 꿈을 품었던 셈이다. 할머니께서 귀가 많이 안 좋으셔서 트로트를 들으실 때는 볼륨을 잔뜩 높이신다. 그 영향으로 어릴 때 장윤정 선배님 노래를 많이 따라 불렀다. 그 때문인지 당시에는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었다. 이후 수년이 지났고, 중1 때쯤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시작됐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밤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가서 노래 연습을 했다. 한번은 경찰이 오기도 했다. 주민 신고를 받았다고 하셨다.

방송 중에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가 화제였다. “앞으로 꽃길만 걷게 해드리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갓 스물을 넘긴 사람이 사용할 어휘는 아니지 않나? 원래 화법이 또래보다 성숙한 편일까? 으하하,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시 쓰는 걸 좋아했다. 그러면서 비유에 집착하고 어휘도 노숙해지고… 사실 말투도 좀 그렇다. 나도 알고 있다. 뭔가 말을 하면 어른들도 흠칫하고 처음 만난 친구들은 당황하기도 한다. 그래도 철이 없는 것보다는 점잖은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말하려고 늘 신경을 쓴다.

밝은 모습을 좋아하는 팬이 많다. 원래 긍정적인 편인가, 아니면 긍정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인가? 원래 긍정적이긴 했다. 엄마가 굉장히 긍정적인 분이라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연습생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아무래도 막막하고 우울한 순간에 종종 부딪친다.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려면 노력도 필요하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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